유산 대신 집장만 후원
“주택시장 수요 견인차”
하루 빨리 손자를 보고 싶다는 토론토 거주 지노 투폰씨는 이를 위한 ‘인센티브’로 딸과 사위에게 집을 사줄 계획이다.
부동산중개인으로 올해 55세인 투폰씨는 딸에게 주택을 구입해줄 충분한 재력이 있다. 지난해 결혼한 그의 외동딸 나타샤씨는 집을 장만할 돈을 모을 때까지 남편과 함께 부모의 집 지하실에서 살면서 당분간 아이도 안 갖고 둘이서 맞벌이를 할 계획인데, 투폰씨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투폰씨는 “물론 자녀에게 유산을 남겨줄 수 있지만 죽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느냐”며 “지금 집을 사주면 딸이 아이를 보다 빨리 가질 여유가 생기고, 나 역시 손자를 보는 기쁨을 더 빨리 누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오늘날 국내 부동산시장에서 젊은 부부들이 주택구입을 위해 부모들로부터 돈을 얻는 것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리맥스(Re/Max) 부동산회사 온타리오·대서양연안 지사는 “이같은 부모들의 ‘투자’가 오늘날 부동산시장을 이끌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다.
부모의 영향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앞으로 10년 내에 국내인들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유산의 규모는 회계전문 ‘언스트 앤 영’사에 따르면 5,500억 달러에 달한다. 또한 2010년까지 최소 100만 달러의 재산을 소유한 국내인은 100만 명으로 늘어날 수 있다. 한편 연방모기지주택공사(CMHC)는 “부모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은 가정의 35%가 이를 주택구입이나 보수에 사용한다”고 지적, 부모의 돈이 주택시장을 견인한다는 말에 설득력을 보태고 있다.
투폰씨는 딸이 집을 살 경우에만 미리 유산을 물려줄 용의가 있다. “자동차 구입이나 다른 목적으론 어림도 없다”는 그는 “주택은 투자가치가 훌륭할 뿐 아니라 딸의 가족이 처음부터 좋은 동네에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나타샤씨는 아버지의 제안 덕분에 세입자 신분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그와 남편은 둘 다 다운타운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도심을 벗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해 교육석사 학위를 취득, 현재 교사로 근무하는 나타샤씨는 그러나 다운타운의 집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아버지의 도움 없이는 주택구입을 꿈도 꾸지 못한다는 것.
나타샤씨는 “내 친구들도 집을 장만할 돈을 모을 때까지 부모에 집에서 같이 사는 등 어떤 식으로든 부모의 도움을 받고 있다”며 “우리 아버지를 포함한 많은 부모들이 모기지 갚느라 쩔쩔매는 자녀의 모습을 보기보다 미리 도움을 주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처음으로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낮아지고 있다. 이들이 부모의 돈을 얻어서 집을 장만하는지에 대해선 정확한 조사자료가 없다. 그러나 뚜렷한 사실은 40세 미만 연령층이 주택시장에 주는 영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2003년 처음으로 집을 장만한 사람들의 49%가 27~40세 연령층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집을 장만하는 미혼자들도 늘고 있다. 외곽보다 도심을 선호하는 이들의 수요 때문에 다운타운의 콘도미니엄과 타운하우스 신축이 늘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부동산 전문가인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수어 서머빌 교수(경제학)는 “아파트에서 임대생활을 하다가 결혼한 다음 돈을 모아서 집을 산다는 예전의 패러다임이 깨지고 있다”며 “요즘은 학생들까지도 콘도를 구입하고 있다.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이들 대다수가 부모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