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가서도 목을 길게 뽑고 조국땅만 바라보는 민족은 한국인과 유대인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해외한인들의 조국 사랑은 각별하다. 그런데 엊그제 보도된 서울 중앙일보의 ‘한국인 정체성 조사’는 이역만리에서 조국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려고 노력하는 해외한인들의 애국심에 찬물을 끼얹는 기사다.
보도에 따르면 “국적을 포기한 한국인을 한민족으로 봐야하는가”라는 질문에 1038명의 응답자중 9%만이 “국적을 바꿔도 한민족으로 봐야한다”고 말했을뿐 나머지 대다수는 “한민족으로 보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이것은 한국민 10명중 9명이 캐나다 등 외국에서 시민권을 취득한 한인들은 동족으로 봐줄 수가 없다는 얘긴데 동포에 대한 무관심과 몰이해를 드러내는 사례중 압권으로 꼽힐 것이다.
한국정부와 기관 등은 그간 입만 열면 “650만 해외한인들은 우리의 귀중한 해외자산”이라고 말했다. 650만 중에는 거주국의 시민권자들도 상당수 있다. 그렇다면 시민권자들은 말로만 한국의 자산이며 실제로는 동족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소리다. 인구의 7분의 1이 해외에 사는 ‘동포대국’의 해외한인에 대한 인식이 이것밖에 안되는가.
현재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나라는 캐나다를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멕시코 등 50개국에 달한다. 이들 나라의 시민권은 일반적으로 국적을 의미하지만 국적보다는 정치적 색채가 짙은 용어로 참정권과 사회보장 혜택 등 정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선택적인 의미를 담은 말이다. 해외한인들이 현지에서 개인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권익을 누리고 혜택을 받으려면 시민권을 받는 것이 선결조건이다.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나라에서 시민권을 받지 않고 영주권자로 남는 것은 정치적 무국적자를 자초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현실적 필요에 따라 취득한 시민권을 두고 “이제는 우리 민족이 아니다”고 보는 것은 지극히 폐쇄적이고 국수주의적인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인들이 해외로 파고 들어가 사는 나라 가운데 차이나타운을 형성하는데 유일하게 실패한 나라가 한국이다. 타운은 커녕 그들이 생업으로 삼는 중화반점조차 오래전에 설 땅을 잃었다. 한국은 잠시 사는 외국인에게는 관대해도 뿌리를 내리려는 사람에겐 극히 배타적이다. “네 나라에서 살지 여기는 왜 왔느냐”는 눈으로 본다.
해외에 사는 같은 민족을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너희는 여기서 살지 무엇 하러 나가서 사느냐”는게 인식의 출발이다. “너희들은 여기와 살면 안되고 너희들은 나가서 살면 안된다”는 것은 국경없는 세계화시대를 역행하는 쇄국주의다.
오늘날 중국이 급성장한데는 회교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중국에 투자한 외국자본은 6000억달러로 추산되는데 이중 3분의 2가 화교자본이다. 화교들이 중국에 집중투자한 것은 물론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이겠지만 중국정부의 화교 우대정책도 큰 역할을 했다. 중국은 79년 이후 해외로 이주한 100만명을 화교로 편입, 취업에서부터 예금이자율에 이르기까지 각종 특혜를 줬다. 이중국적도 부여했다. 지금 한국정부나 한국민이 해외동포를 보는 눈과 180도 다르다.
한국은 해외동포문제에 대해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내다 볼 필요가 있다. 지구상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사용하는 인구가 적어진다면 결국 한국어와 한국문화는 사라질 것이다.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사용하는 인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한민족의 힘은 그만큼 더 강하게 된다. 선진국들이 자국의 언어와 문화를 세계에 보급하기 위해 실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떠나 코리언은 어디 가서 살아도 코리언이라는 인식이 없으면 한국의 힘은, 한민족의 힘은 갈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다.